성형칼럼

의술과 예술의 만남

가슴성형을 연구해온 김잉곤 박사의 안전한 보형물 사용과
오랜 경력에서 나온 노하우는 결코 쉽게 따라 올 수 없습니다.

성형칼럼
20년 전의 비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압구정필
조회 746회 작성일 04-04-06 08:48

본문

<20여 년 전의 비밀>
...........중학교은사 정진석 선생님 회고록에 붙이는 글

"잠깐만! 김선생님..." 당황해하시는 사모님을 뒤로 하며 병실로 들어섰는데... 아뿔싸 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레지던트 1년차였던 나는 과로로 인한 수면 부족과 굶주림(?)으로 지쳐 있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교장 선생님의 병실에 들러, 음료수와 각종 먹거리로 배를 채우는 기쁨을 누렸고 어떤 때는 소파에서 졸기까지 하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교장 선생님께서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하시게 된 것이 나의 행운의 시작이었다. 물론 교장 선생님께는 뜻하지 않은 불행(?)의 원인이 되었지만... 사연은 이렇다.

당시 전국 사립중고 교장회의(맞는지 모르겠다. 하도 오랜 세월이 지나 이름이 가물가물한 점을 용서하시길) 부회장이셨던 교장 선생님(지금은 이사장님이시지만 내게는 언제나 교장선생님이시다.)은 회의 차 상경하셨다가 불의의 교통 사고로 다행스럽게도(?) 우리 병원에 입원하셨다. 당신 생각에는 그래도 제자가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하시고 싶으셨던 것일 테고, 제자는 제자대로 이 기회에 자신이 이렇게 멋지게 큰 모습을 자랑하고픈 우쭐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이제 겨우 레지던트 1년 차인 주제에...!) 나는 이번 일을 스승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을 기회라 생각하고 은근히 뿌듯해 하기도 했다.
당시 선생님은 발과 팔을 다치셨으므로 기브스를 해야 했고 당연히 병상에 누워계셔야만 했던 처지였다. 응당 침식을 병상에서 누운 채로 하셔야 했고 큰 볼일(?)도 그 상태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지만 우리의 교장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던가? 교육에서나 일상 생활서나 항상 교육자다운 깔끔하고 엄격한 생활 태도가 몸에 배신 분. 그런데 어찌 감히 누워서 큰 일을 볼 수 있겠는가? 도저히 당신으로서는 받아들이실 수 없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나마 작은 일이라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해결할 수 있겠지만 병실에서 큰 일을 본다면 곧 방에 냄새가 배게 될 테고 의사나 문병객은 물론 바로 옆에 계신 사모님께도 볼 낯이 없을 것이다. 대강 이런 생각을 하시고 혼자 연구를 하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최대한 식사를 적게 하시는 것이었다. 들어간 것이 적으면 나오는 것도 적은 법. 그 방법이 효과를 보는 듯했고, 며칠간은 큰일을 치르지 않고 지내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장운동이 약해지고 식사량도 적어지니 나가야 할 배설물이 단단하게 뭉쳐서 변비가 될 수밖에. 당연히 아랫배가 불편하고 아파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이 손가락으로 파내는 일이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 체면에 이게 될 말인가? 손가락으로 파내다니... 결국 관장하는 방법 밖에 없었는데 이건 생각보다 귀찮고 힘든 일이다. 사모님께 쉬운 방법으로 알려드렸건만 잘 안 되었던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같은 또래의 정형외과 주치의에게 부탁해서 변비약을 투여해 드리도록 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선생님의 불행의 씨앗일 될 줄이야... 그때였다. 바로 내가 병실에 들어선 것은...
변비가 터진 것까지는 좋았으나 이게 줄줄 흐르게 된 모양이다. 병실은 온통 악취가 나고 선생님과 사모님은 당혹함과 난처함에 어쩔 줄 몰라 하고 계셨다. 나 또한 원인제공자로서 죄의식에 사로잡힐 수밖에... 그렇다고 안부인사만 드리고 나올 수는 없는 일. 예전처럼 태연하게 사모님이 주시는 음료수를 받아 마시고,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을 묵묵히 참아 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에 그렇게도 정갈하셨던 당신이라 더욱 면목이 없었다.

선생님은 그 일이 있고 난 후에도 몇 개월 동안 병원에 더 계셔야 했고 답답한 병원 생활을 참 잘 참아내셨다. 원래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들은 남의 말에도 귀를 잘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더더욱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남에게 지시하는 일은 많지만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데는 익숙하지 않은 직업. 그런데 선생님은 초등학생 마냥 의사의 지시를 잘 따라 주셨다. 어찌나 잘 따라주셨던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가장 모범적인 환자로 기억이 된다. 어떻든 모범적인 환자 생활 덕분에 선생님은 말끔히 완치가 되셨고 지금도 정정한 모습으로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계시니 참 기쁜 일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처럼 당신에게 철저하셨고 완벽에 가깝도록 노력하셨던 선생님이시기에 그 동안 수많은 제자들을 이렇게 훌륭하게 길러 내셨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씩 선생님을 뵐 때면 특유의 절도 있는 '로봇 걸음'걸이가 40여 년 전과 다름없는 걸 볼 때, 선생님의 모범적인 환자 생활이 떠오르곤 한다. 어쩌면 선생님은 그 모습을 통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제자에게 몸소 보이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지금도 20여 년 전, '큰일 사건'을 생각하며 조용히 웃는 내게 더 즐거운 상상 하나.
"선생님과 사모님은 이 사건을 기억하시려나? 혹 잊어버리셨다면 이 글을 읽고 얼마나 당황하실는지?"